박주영, 그리고 이동국...시대유감.
박주영, 그리고 이동국...시대유감.
요즘들어 박주영과 이동국을 비교하는 글을 참 많이 보게 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들의 이분법이랄까요. 박주영이 천재이면, 이동국은 천재가 아니다? 박주영이 진짜이고, 이동국은 가짜이다? 글을 쓰기에 앞서, 가볍게 심호흡을 해봅니다.
1998년의 이동국 그리고 2005년의 박주영. 무려 7년 차이입니다. 무엇이 얼마나 변했을까요.
3년전엔가, 제가 이동국을 두고 가슴아픈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생체실험을 당하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와도 같다고. 혹은 인간 기니피그 신세라고나 할까요. 우리들은 이동국을 통해 많은 교훈을 얻고, 많은 시도를 하며, 시행착오를 하며, 많은 방향을 세웁니다.
협회에서 유망주 육성 차원에서 이동국과 설기현 등을 두고 해외진출 프로젝트를 실시하기 시작했고..언제나 새로운 것을 실시할 때는 이동국이 1선에 있었지요. 이동국이 브레멘에서 재계약을 못하게 되자, 2002 월드컵을 앞두고 일각에서 '이동국처럼 군 문제 때문에 발목 잡히는 일이 없도록 월드컵 16강에 들면 군면제 혜택을 부여하자'라는 목소리를 높였지요. 그런데 막상 이동국이 엔트리에 탈락하자 공교롭게 상무 프로리그 안건도 대두되었습니다. 사실 저도 다른 싸이트에서 상무의 K리그 입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만 당시엔 현실성이 없을 것 같았지요. 그리고 상무의 K리그 입성이 추진되자, 상무 이강조 감독은 적극적으로 이동국을 영입하려고 했습니다. 스타일을 바꾸려는 이동국과 막으려는 최순호 감독 간의 갈등도 작용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무의 의욕이 더욱 컸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무의 K리그 입성이 제기될 때부터 테스트 차원에서 이동국을 계획에 포함시킨 것이 아닌가, 줄곧 의심하기도 했습니다.
이동국 때문에, 사람들은 혹사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고, 이동국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관리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동국 때문에, K리그 경험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 이동국 때문에 부상관리의 중요함을 알게 되었고..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 새로운 유망주가 나타나면 늘 이렇게 말합니다. "이동국처럼 혹사시켜서는 안된다." "이동국처럼 자기관리를 않고 방심해서는 안된다.", "이동국처럼 준비없이 급하게 해외임대를 보내선 안된다", "이동국처럼 움직이지 않아서는 안된다." 어제까지 이동국을 혹사시키고, 어제까지 이동국을 휘둘러서 자기관리에 대한 개념을 잃게 만들고, 어제까지 이동국을 골문 앞에 고정시키는 타겟으로 변형시킨 사람들이, 언제나 이동국이란 모형을 통해 새로운 것을 추구합니다.
지인 한분은 이동국 덕분에 길이 닦여서 다른 선수들이 잘된다며, 계속 그래줬으면 좋겠다는 말을 무심코 하셨는데, 그때 가슴이 찢어지더군요. 선수들을 제대로 키울 줄 모르는 시대에 태어나서, 기니피그처럼 실험되고, 시행착오를 통해 오히려 길을 닦아주는 신세로 취급되다니.
솔직히 박주영을 보면서 시샘을 느꼈습니다. 2002년에 이동국을 보면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저런 신체조건과 감각에 왜 진작 브라질의 삼바리듬을 접목시키지 못했을까, 하는 것입니다. 정말 한이 맺히더군요. 이동국에게 가장 필요했던 공기는 독일이 아니라 브라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포항이나 대표팀에서라도 브라질 감독을 만나길 빌었고, 선수를 창의적으로 조련시키고 브라질에도 정통한 김병수 코치를 만나길 빌었지요. 하지만 시간은 자꾸 흘렀고.. 너무 늦어버릴까봐 두렵더군요. 이제 박주영을 보면서, 제가 그토록 이동국에게 붙여주고 싶어했던 삼바리듬과, 제가 그토록 지켜주고 싶어했던 열정을 확인합니다.
감히 말합니다. 박주영이 이동국보다는 행운아였다고. 좀더 늦게 태어나서, 좀더 많은 것을 얻었다고. 천재는 타고나고, 또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박주영은 각급 대표팀에 휘둘리지도 않고, 여러 감독들에게 한꺼번에 휘둘리지도 않고, 삼바리듬을 적용하면서 박성화 감독 아래서 착실하게 커갈 수 있었습니다. 박성화 감독도 눈이 있습니다. 이동국, 정조국 등을 지켜보면서 박주영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를 터득한 것이지요. 최순호 감독과 박성화 감독을 비교해달라는 이상헌 기자의 요청에 이동국이 이렇게 밝힌 바 있습니다. "박성화 감독은 나를 업그레이드 시켜준 분이다." 그 박성화 감독이 이동국과 정조국을 거쳐 좀더 진화한 노하우를 통해 박주영을 만났습니다. 다른 각급 대표팀 감독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자기만의 구상으로 확실히 조련했지요.
동시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같은 신체조건도 아닌데, 왜 이동국이 박주영과 비교되어야 합니까? 7년전에 박주영이 이동국 대신 그자리에 있고, 오늘 이동국이 박주영 대신 이자리에 있다면, 어떻게 키워졌을까요? 상상해 보셨습니까? 그때 우리의 지도자들이, 우리 팬들이 선수를 제대로 키울 준비나 되어있었습니까?
이동국은 기니피그가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제 주변의 이동국 팬들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지요. 같이 공부하자고. 같이 배우자고. 그래서 조금이라도 이동국과 함께 성장하자고.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무조건 흘러가는대로 방치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이제 박주영이 나타났다고 이동국을 놓을 생각은 없습니다. 아직도, 용암처럼 살아숨쉬며 펄떡거리는 감각을, 스스로도 어떻게 살려낼지 몰라서 안으로 억압해온 감각을, 저는 이동국을 지켜보는 동안 여러차례 목격했습니다. 가끔씩 툭툭 삐져나오는 감각을 아쉬워하면서, 제대로 임자를 만나기를 빌었지요. 그 억눌린 감각을 끌어올려줄 임자를 만나기를.
가장 중요한 것은 이동국이 그 7년동안의 굴곡에도 끝까지 자기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흘러보내고 사장시킨 수많은 천재들 가운데서도, 이동국은 아직도 잡초처럼 빳빳이 고개를 들고 세계를 향해 눈길을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의 소중함을 저는 잊고 싶지 않습니다.
끝으로 이동국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순간부터 조금이라도 자기계발에 방심하거나 부상관리에 소홀하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본프레레 감독, 파리아스 감독을 동시에 만났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 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출처 : SOCCER WORLD (조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