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님! 운동 준비 끝났습니다."

"무슨 운동이죠."

"추, 축구 준비요."

"토론이 없는 훈련이 어디 있어요. 운동화를 벗고 모두 휴게실로 모이세요."


1995년 봄, 내가 부천 SK 프로축구단 코치로 있을 때다. 러시아의 니폼니시 감독이 부임해 왔다. 이튿날 아침, 나는 종전대로 선수들에게 운동 준비를 시키고 감독실로 들어갔다. 니폼니시 감독의 마인드는 한마디로 걱정스러웠다. 한국축구 현실과 전혀 맞지 않았다. 특히 오전·오후 자유토론 시간은 고통이었다. 대부분 말주변이 없는 선수들은 '축구 감독 맞아'식의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니폼니시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훈련상황을 조목조목 설명하면서 토론시간을 더 진지하게 이끌었다. 훈련 때는 선수들과 매일 운동장에서 함께 뛰었다.


"최윤겸 코치! 앞으로는 기술축구로 유도해. 한국축구는 뻥뻥 내지르는 '뻥 축구'야."


나는 황당했다. 그로부터 6개월 후. 내 생각은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감독의 정성에 탄복했다. 감독의 생각은 '축구는 전투가 아니라 유연한 패스 속의 예술'이었다. 기술축구의 묘미를 알 것 같았다. 니폼니시 감독은 4년간 120게임을 치렀다. 그때마다 토론을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당시 메모해 둔 120권 분량의 훈련노트를 대전의 지도자가 된 지금 유용하게 쓰고 있다. 나의 유일한 등불인 셈이다.

 

Posted by 공차는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