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스포츠라는 종목,특히 축구라는 종목은 과거부터 "전쟁"적 용어가 난무해 온것이 사실었다.우리가 흔히 포워드라는 용어 대신 최전방 공격수라는 표현을 쉽게 사용하듯이 군대 혹은 전쟁이라는 그다지 좋지 않은 뉘앙스의 단어들이 축구 세상속에서 종종 쉽게 통용되고 있는것이다.
70년대에 개최될 멕시코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맞붙은 북중미의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간에 벌어진 축구로 비롯된 4일간의 전쟁이나 벨기에 하이젤에서 벌어진 유럽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리버풀과 유벤투스 서포터스간의 유혈 사태 등으로 보건데 분명 축구라는 종목은 단순히 엔터테인먼트적 요소를 넘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는 스포츠인것만은 틀림없을것이다.
위에 잠시 언급된 축구에서 사용되는 전쟁적 용어의 집합 중에는 "용병"이란 단어도 포함되있다.
용병....그 단어의 어원은 고대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고 한다.원래 전쟁에 대비한 군주나 왕들이 자국민만으로 상대에게 대적하기 어려운 경우 종종 타국민들에게 일정액의 보수를 주고 임시로 자국병사로 고용해 전쟁을 대비했다는데 그 기원이 있다고 한다.
그 용병이란 개념이 이제 좀 다른 의미로써 전쟁터가 아닌 스포츠 세상에서 널리 통용되고 있다. 지금도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는 스포츠 현장에 제2의 국적을 가진 용병들이 땀을 흘리며 뛰고 있고 이 점은 대한민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프로야구,KBL,프로축구..최근엔 프로리그로써 형태를 갖춘 V-리그마져도 용병제 도입이 허가돼 국내 4대 스포츠종목 어디에서도 용병들의 활약을 볼 수 있는 세상이 된것이다.
"Part-1. K리그 용병에 대한 백과 사전-90년대 용병에 대한 회고"
이 글을 게재하는 장소가 축구 사이트인 관계로 당연히(?) 우리는 K리그의 용병 얘기를 이어나갈 것이다.
여러분들은 K리그를 거쳐간 혹은 지금까지 활약했던 용병들 중 기억나는 선수가 있는가? 아마 사커월드 회원분들 정도의 내공을 갖추신 분들이라면 벌써 이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지금 이순간 에도 벌써 4~50명 정도의 용병 이름이 거론됐을 법 싶다.
피아퐁..라데..샤샤..사리체프(신의손)..마시엘..산드로..나드손 등..등 생각해보면 그래도 비교적 열악했던 그간 K리그 사정을 감안하면 참 괜찮은 용병들이 대한민국의 K리그란 타이틀하에서 벌어진 수많은 경기 속에서 우리들과 함께 했었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K리그 용병의 역사를 살펴보자..
신기하게도 믿기 어렵겠지만 K리그 최초의 용병의 역사는 K리그 원년인 83년부터 이루어졌다고 한다. 현 포항 스틸러스(전신 포항제철 )에서 브라질 출신인 세르지오와 호세라는 두명의 용병 선수를 들여왔지만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다음해인 84년도에는 좀 특이한 일이 발생했다.80년대 비틀즈풍(?)의 헤어스타일로 전국구 스타(?)였던 허정무감독이 이제 우리축구팬들하고 뗄레야 뗄수 없게된 네덜란드리그 PSV아인트호벤의 선수 시절 당시 렌스베르겐이라는 장신 선수에게 K리그행을 권유하면서 K리그 도입 단 2년만에 네덜란드 국적의 선수가 한국땅을 밟은것이다.
렌스베르겐은 입단 첫해 9골9어시스트라는 좋은 활약에 도움왕까지 수상하며 허감독을 실망(?)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이듬해인 85년도에게는 한국에 이른바 태류(?)가 번졌던 시기였다.태국 국적의 피아퐁이 당시 럭키금성 소속으로 득점왕(12골)과 도움왕(6AS)의 더블을 달성하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당사자인 피아퐁은 아직까지도 국내 올드팬들에게 종종 회고된다.
얼마전에는 피아퐁과 그의 아들이 국내에 방한해 국내 K리그 입단을 타진해 화제를 모았었는데 불발돼 아쉬움을 남겼다.
그렇게 예상 외로 K리그 초기에 국내에 선을 보여 비교적 좋은 반응을 불러모았던 용병의 활약상은 80년대 후반부부터 기껏해야 전체 용병수가 1~2명 정도에 그쳐 다소 맥이 끊겼다고 볼 수 있었다.(86년:2명,87년:1명,88년:0명,89년:2명)
90년대 K리그-동유럽출신의 K리그 평정이 대단했다.
90년대 K리그는 가히 동유럽 국가 출신이 K리그 용병의 "주류"로 대접받았던 시기라고 봐도 무방할것 같다.90년대 K리그에서 빛났던 용병스타들도 주로 라데 보그다노비치나 데니스,샤샤,사리체프,스카첸코,바데아 등 구 유고연방권이나나 동구권, 혹은 구 소련 분리국들이 대다수였다.
이는 몇번에 걸쳐 당시에도 기사화된바 있지만,주로 '저비용 고효율'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탓이란것이 통설이다.과거 7-80년대 유럽최고의 리그라던 분데스리가가 현재 다소 쇠퇴한 이유 중 하나가 국민정서상 비싼 몸값의 선수를 영입하기가 다른 라 리가나 EPL.세리아 A등 의 리그보다 어렵기 때문에 비교적 몸값이 싼 동구권이나 북유럽쪽 선수들을 선호하는 쏠림현상이 발생한것도 한 이유가 될 수 있듯이 당시 K리그도 같은 맹락에서 효율성을 추구했던것이다.
물론 90년대에도 브라질을 위시로 한 남미계 선수의 K리그 러쉬현상은 이어졌는데 '90년대가 동구권용병들이 주류'였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유럽선수들이 남미계 선수들보다 더욱 두드러진 활약을 했기 때문이다.
"90년대 중반까지 K리그 용병 최고수였던 라데 보그다노비치"
가장 두드러진 활약을 보였던 선수는 역시 단연 라데 보그다노비치였다.K리그 통산 147경기에 출전해 55골을 터트렸던 라데 선수는 갖가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K리그 최초 한시즌 10-10클럽(10골,10AS)을 가입했고 k리그 최초로 한경기 네골을 터트린 것고 그였고 94,96시즌에 각각 시즌 베스트일레븐에 선정됐고 특히 96시즌에는 무려 14개의 도움을 주며 도움상을 받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라데는 k리그를 거쳐 J리그(제프 UTD)->스페인 라리가(AT마드리드)->분데스리가(베르더 브레멘)의 연이은 행보를 하며 K리그 출신선수도 유럽에서 통할수 있음을 입증한 장본인이기도 했다.아직도 포항팬을 비롯한 많은 팬들은 그의 이름에서 노스텔지어를 느낀다.황선홍-라데 콤비의 달콤함이란...
성남 일화(당시 일화 천마)의 90년대 초반 황금시대를 열었던 장본인인 사리체프(신의손)
라데 선수를 거론하기 전에 원래 이선수부터 논했어야 정석이었으나 필자가 잠시 라데의 향수에 빠져 임무(?)를 망각했다.
사리체프...혹은 신의손.
사실 이제 당당히 귀화해서 국내국적을 취득했으니 "신의손"이라고 불러야 마땅하지만 아직도 신의손이란 이름보다는 사리체프가 더욱 익숙한 그다.그만큼 9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그의 활약은 실로 눈부셨다.
93,4,5년 역속 K리그 우승이란 금자탑을 쌓았던 성남 일화의 중심엔 고정운,박남열,김경범,김이주...그리고 박종환 감독님이 있었으나 그도 분명 주역 중 한명임은 자명하다.
거미줄이 연상되는 방어력..순발력..기적같은 세이브..92시즌 외국인 최초로 수비상과 베스트11 골키퍼부문에 선정되더니 93,94,95..3년 연속으로 시즌 베스트일레븐 GK부문을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고 특히 93시즌에는 887분 연속무실점 기록이라는 (당시로써) 경이로운 기록을 세웠다.
작년 발표된 국제축구기록통계연맹이 발표한 전세계 GK부문 연속무실점기록에서 아시아 리그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68위에 랭크되며 국내리그 알리기에도 한몫하는 등 그의 업적은 실로 눈부셨다할만 했었다.이는 국내 K리그에 외국인 골리 열풍에 휩싸이게 만들었다.그후 드라간,당시 유공의 샤샤..등의로 이어진 외국인 용병 골리 특종시대의 서막은 사리체프가 연 셈이다.
최근에 신의손은 국내 골키퍼를 위한 GK클리닉 등을 연다고 한다.
"우승 청부업자 샤샤 혹은 저니맨 샤샤..
샤샤에 대한 첫기억은 날카로왔다..어린 나이부터 유독 스포츠신문에 관한 애착이 있던 나는 당시 어린 나이에 비교적 큰 돈이었던 하루에 500원(?)을 꼭 투자해 스포츠 신문을 사보곤 했는데 하루는 축구면에 "대우(현 부산 아이파크) 유고산 특급용병 영입한다!"라는 타이틀을 걸고 그에 대한 소개가 나와있었다.당시까지는 유고연방공화국이었던 그의 나라 명문 레드스타 베오그라드에서 한시즌 56골이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세웠던 그를 국내 K리그 명가 대우가 영입한다고 나와있던것이었다.
첫시즌에는 비교적 얌전했던 샤샤 드라큘리치는 97시즌 소속팁 부산 대우의 우승에 기여하고는 이듬해 수원으로 이적한다.수원에서 비탈리,미하이 등과 최전방 투톱중 한자리에 위치하면서 대우시절보다 더욱 좋은 몸놀림을 보였던 샤샤는 98시즌 팀의 창단 첫 우승에 기여하더니 99시즌엔 18골로 득점킹에 오르며 팀 수원 삼성의 리그 2연패를 서포트한다.하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 터트렸던 골든골이 헨드볼이었다는 논란거리를 제공하며 유력하기만 했던 시즌MVP는 안정환에게 돌아가고 만다.
그후 성남의 노란색 저지를 입은 샤샤는 팀의 3연속리그 우승에 다시금 기여하며 가는곳마다 소속팀을 우승으로 이끌며 "우승청부사"라는 기분 좋은 애칭까지 덤으로 얻는다.K리그 통산 271경기에 나서 100골에 단 한골이 모자란 99골을 터트리며 K리그 역대 외국용병 최다골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개구장이 데니스 혹은 악동으로도 불렸던 수원 시절 데니스"
그리고 또 한명의 이방인.데니스 얘기를 해보자.이제는 수원으로 이적했기에 자연스럽게 데니스라고 불러도 될것 같다.96년 창단한 수원원년 멤버였던 데니스는 시즌 첫해 팀의 후기리그 우승을 이끌며 가능성을 입증했었다.
폭발적인 드리블링과 스피드.파괴력.득점력.프리킥능력 등을 갖추었던 데니스는 흡사 현존하는 가장 전도유망한 선수 중 한명인 프리미어쉽 맨유 소속의 웨인 루니를 보는듯 했다.심지어 그 성격까지 말이다...
선수로써의 재능과 실력은 대단했고 팬들에게 쉽게 어필되는 스타일이어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개구장이 데니스"였지만 종종 터트리는 시한폭탄 같은 성격적 요소는 코칭스태프들에게 분명 골칫거리였을것이다. 가장 유명한 사건인 98년 부산 구덕운동장에서 벌어졌던 김주성선수와의 사건은 차지하고서라도 암튼 팬들에겐 참 많은 관심거리를 제공해준 선수이다.
위에 언급한 샤샤와 더불어 98,99시즌 연이어 소속팀 수원에게 리그 챔피온의 영예를 안겨준 장본인인 데니스는 2003년에 성남 일화로 이적하며 수원팬들에게 충격을 안겨주었다.그리고 이름도 '이성남'으로 개명하며 귀화를 하더니 팀의 리그3연패를 이끌었다.또한 50-50클럽 최단 시간 가입이라는 기록도 세우며 K리그 역사에 분명한 족적을 남겼다.
올해 다시금 친정팀으로 컴백하는 그의 활약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위에 언급한 특급활약을 펼친 4명의 유럽출신 선수외에도 올드팬들에게는 아직도 회고되는 선수들은 분명 많다.필자는 과거 부산 대우 로얄즈의 긴 꼽슬머리를 휘날리며 날카로운 어시스터 능력을 보여주었던 왼발의 명수 아미르선수와 당시 유공(현 부천 SK)에서 종종 멋진 왼발프리킥골을 잡아내었던 조셉선수(어떤 경기에서는 도저히 각도가 없는 30도정도의 각도와 먼거리에서 프리킥골으 성공시키고 했었다),전 안양LG소속으로 참 아름다운 골들을 많이 잡아냈던 스카첸코-동대문에서 벌어진 포항과의 경기에서 그가 넣은 골은 분명 아트,그 자체였다.물론 포항의 첫골인 홍명보선수의 중거리포도 멋졌지만-,니포축구시대를 열었던 과거 유공시절 득점킹을 차지했던 세르게이선수 등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구덕 운동장을 누볐던 마니치선수 역시 물론이다.유럽계 외에는 2000년 안양LG소속으로 '독수리'최용수선수와 더불어 리그 우승에 일조했던 안드레선수와 전남 소속으로 몇년간 던젼구장을 누볐던 마시엘선수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었다.안드레 선수는 대부분의 골들은 프리킥골로 잡아내면서 프리킥스페셜리스트란 애칭을 얻었었고 마시엘선수는 전남경기 대부분을 베스트멤버로 뛰며 K리그 올스타전 용병선수 명단 단골손님이기도 했다.
"Part-2. 2000년대 K리그는 외계인들이 점령했다?-2000년대 K리그 용병풍경 ."
위에도 언급했듯이 90년대에 분명 동구권을 위시한 유럽계선수들의 K리그에서의 활약이 두드려졌지만 각팀들의 브라질을 위시로한 남미계 선수들의 수혈은 줄곳 진행형이었지만 다소 미약했던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새천년이 도래한 뉴 밀레니엄시대에 들어서 K리그 무대에 대한 남미계통의 선수러쉬현상은 점차 수위가 높아져간다.특히 브라질선수들의 수입이 두드려지는데,99시즌에 5명에 불과했던 브라질국적의 선수들이 2000시즌에 11명,01시즌 19명,02시즌엔 26명으로 대폭 늘어나게 된다.
이에 대한 기사나 각종 미디어분석들은 주로 "높아진 K리그의 위상과 상대적으로 열악해진 브라질리그의 재정수급상태"를 꼽았다.즉,2002월드컵을 개최함으로써 국내리그에 대한 위상이 많이 올라갔고 인지도도 높아졌고,반면 브라질 리그 등은 월봉마져 제때주지 못할만큼 재정적 어려움에 취해져서 이 점이 시너지효과가 발생해 브라질리그 선수들이 대거 K리그에 유입됐다는것이다.
또한 브라질선수들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아르헨티나,아프리카 출신 등 2000년대 들어서는 K리그도 유입되 들어오는 외국용병선수들의 국적이 종전보다 훨씬 다분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이제 2000년대 들어서 K리그 비교적 큰 족적을 남겼던 선수들을 브라질국적 선수들 위주로살펴보자.
1.산드로
2001시즌 수원의 푸른 저지를 입고 13골을 터트려 득점킹을 차지한 그다.이듬해인 2002년초 A3대회에서도 연일 골폭죽을 터트리며 한때 2002월드컵에 나서는 A대표팀을 위해 그를 귀화해야한다는 여론을 돌 정도로 그의 활약은 대단했다.
하지만 그후 J리그에서 다소 적응을 실패한 이후 작년 K리그 친정팀 수원으로 유턴해 와서 현재 컨디션 회복중에 있으나 용병 제한 3명안에 살아남을지는 미지수이다.
2.에드밀손
02시즌에 전북의 초록색 저지를 입고 14골을 터트려 전해의 산드로에 이어서 다시금 브라질출신 선수의 득점킹수상 행진을 이어나갔다.다음해인 03시즌엔 어시스터로 변신해 전시즌 자신이 터트린 골수만큼인 14개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전주성을 찾은 많은 팬들에게 브라질 축구의 진수를 선보였다.특히 에드밀손은 퍼플 아레나를 간만에 찾았던 필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듯한 멋진 프리킥골을 작렬시키며 대전의 패배를 이끌며 강렬한 기억을 남겼었다.하지만 그후 장기간의 부상에 시름하며 얼마전에 팀으로 복귀했으나 미래는 불투명하다.
3.마그노
42경기 26골.경기당 0.62골.단 한시즌만을 뛴 마그노의 기록이다.03시즌 국내 K리그에 모습을 드러낸 마그노는 단 한시즌만을 뛰고 일본J리그로 이적했으나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특히 필자가 직접 퍼플 아레나에서 직접 관람했던 대전과의 경기에서 터트린 골은 아직도 뇌리에 강렬히 남아있다.넘어온 크로스를 다소 각도가 없었던 지점에서 논스톱 발리슛으로 네트에 꽂아버리는 그 피니쉬 능력이란..당시엔 비록 상대팀 선수였지만 박수 받을만한 골이었었고 대전 퍼플 아레나 관중석은 찬물을 끼얹은듯 적막이 감돌았었다.
아직도 전북팬을 비롯한 많은 팬들은 03시즌 보띠-마그노-에드 3인방을 그리워한다. 그들 조합의 축구는 분명 흥미로웠다.
4.노나또&훼이종
04시즌 대구FC하면 이 두 브라질콤비를 빼먹으면 잉꼬 없는 찐방이라고 봐도 무방하다.그만큼 두 선수의 위력은 꽤 쎘다.노나또 32경기 19골 3AS,훼이종 29경기 11골 2AS. 둘이 합작한 골수만 해도 무려 30골이다.
훼이종 같은 경우는 04시즌 K리그 첫 해트트릭을 광주 상무전에서 기록하며 대구발 돌풍을 예고했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대구팬들로써는 아쉬운 일이 벌어졌다.04시즌후에 두 선수는 각각 GS,성남으로 이적,임대 등으로 팀을 떠나버린 것.더군다나 지난 05시즌 노나또는 자주 경기에 출장치 못한체 단 7골에 머물렀고 훼이종은 주전 기회를 상실한체 고국으로 돌아갔다.
5.또 다른 산드로
하지만 그런 대구팬들의 우려와 아쉬움을 달래준 선수는 또 다른 외계인국(?)선수였다.일본계 브라질리언 산드로 히로시.
05시즌 다소 왜소해 보이는 피지컬로 K리그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 산드로는 통상 K리그문을 두드렸던 브라질선수들과 달리 그의 2005시즌 목표명인 "팀성적이 우선,두번째가 득점왕"처럼 개인전술과 팀전술을 고루 이용할 줄 아는 모습을 보이며 화려한 발재간,침착한 골마무리 등 자신의 능력을 맘껏 보여주며 통산 17골을 터트렸다.특히 시즌 초반 컵대회에서 신드롬의 주인공 "박주영"선수를 제치고 7골로 득점킹에 오르면서 주목을 한 몸에 받았었다.
하지만 올시즌부터는 전남으로 적을 옮기면서 또 다시 대구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겨주고 있다.올시즌에도 그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6.모따와 나드손
04시즌 득점킹의 주인공이 모따다.그리고 04시즌 MVP가 바로 나드손이다.
모따는 04시즌 K리그에서 전남의 노란색저지를 입고 14골을 터트려 득점킹에 올랐고 03시즌중에 수원의 푸른 저지를 입은 나드손은 브라질 올대 출신답게 폭발적인 득점력과 호쾌한 슈팅력,다이내믹함을 선보이며 소속팀 수원의 통산 3번째 리그 챔피온등극에 기여하며 리그 최우수선수로 선정되었다.
모따는 그후 포르투칼리그 명문 스포르팅 리스본으로 이적하였다가 지난 시즌중에 성남 일화의 노란 저지를 입고 화려하게 컴백했고 나드손은 시즌초의 기대와 달리 장기적인 부상으로 팬들을 안타깝게 했다.시즌초 A3대회 등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나드손이 선보였던터라 더욱 수원팬들은 그의 공백을 시즌 내내 느껴야만 했다.
7.그 외 알리송,레안드롱,뽀뽀,히카르도(GS->성남),보띠(전북),두두(성남) 등도 00년대 K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던 브라질출신 선수들이다.
8.NON Brazilian Players(Since 2000시즌)
"05시즌 두드러진 활약을 보여준 크로아티아 용병 마토"
2002월드컵을 계기로 분명 K리그의 위상은 높아진게 사실이고 그후 K리그로 들러오는 용병들의 네임벨류나 수준은 높아진게 사실이다.위에 열거한 브라질출신 외의 주요한 활약을 했던 선수들을 열거해보자.
8-1. 마토(수원)
지난 시즌 수원은 마토가 이끌엇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수비수지만 리버풀의 히피아나 토튼햄의 레들리 킹처럼 세트피스시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해 무려 10골이나 터트렸다.어시스트도 수비수치곤 꽤 많은 2AS.크로아티아 국가대표로 유로2004까지 참가한바 있는 마토는 아쉽게 이번 칼스버그컵 크로아티아대표팀명단에는 제외됐지만 분명 현재 수원의 다이아몬드다.
8-2.가브리엘 포페스쿠(수원)
루마니아 국가대표 출신으로 라 리가 발렌시아에서도 활약했을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던 선수로 국내 k리그에 들어와서 꽤 좋은 활약을 펼쳤었다.과거 수원 초창기 멤버인 같은 루마니아 출신인 바데아만큼은 아니었지만 수준 높은 패스선이나 프리킥능력,볼배급능력을 선보였었다.
8-3.하리(부산->성남->경남??)
콜롬비아 리그 득점킹출신으로 갈매기 날리는 부산으로 입성했던 하리는 무엇보다 테크니션으로써 멋진 기술을 자주 선보이며 팬들의 눈을 즐겁게 했었다.K리그 올스타전에서 보여주었던 전설의 사포기술 외에도 다양한 고급 기술을 종종 선보이며 국내 무대를 누볐다.성남시절에는 다소 활약이 주춤했다가 최근 신생팀 경남FC입단설이 나돌고 있는데 팀 입단이 유력시보인다.
8-4.아기치&라돈지치(인천)
05시즌 인천을 이끈 이방인들이다.라돈지치 같은 경우는 04시즌부터 팀에 들어와 적응기를 거쳐 05시즌 특히 놀라운 성장세를 보여주며 팀 공격을 이끌었고 아기치는 미들진에서 적절한 볼배급과 조율 능력을 보여주었다.
"Part-3- 아쉬운 여운이 남았던 용병 선수들"
우리 대표팀 전력 자원이라고 불 수있는 송종국 선수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떤 한 선수가 자국리그가 아닌 타국의 프로리그에 나가서 용병선수로써 성공하기란 단순히 실력 이외의 변수적 요소도 자리잡고 있는게 사실인것 같다.(송종국 선수가 하루 빨리 컨디션 회복해서 태극 저지 입길 기원합니다)
그럼 지금부터는 외면상으로는 적응 실패 등의 이유로 그다지 오랜기간동안 K리그무대를 누비지 못하고 떠나가버린 다소 다쉬움이 남는 용병 선수들을 비교적 주관적인 시각속에서 추려보고자 한다.
1.드라간(과거 안양LG)
드라간은 입단전부터 역대 최고 몸값의 용병이란 이유로 많은 관심을 불러보았었다.하지만 그는 잧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다른 기타 사유 등으로 인해 사실 피치 위에서 많은 시간을 뛰지는 못했다.하지만 컨디션이 절정일 때는 역시 몸값한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만큼 센스있는 플레이를 종종 보여주었었다.참 아쉬운 선수다.
2.올레그(과거 안양)
이 선수 역시 기량에 비해 비교적 저평가받고 다소 일찍 한국무대를 떠나버린 케이스.그는 그라운드의 지휘자로써 충분한 역랑을 보여주었고 가끔은 파괴력을,또 가끔은 완급조절의 능력을 보여주며 플레이메이커로써 출중한 기량을 선보였었다.하지만 구단은 그를 장기간 소유하지 않은체 돌려보내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3.투무(포항)
투무란 용병 이름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그리 많지 않을것이다.그도 그럴것이 시즌 거의 말미에 급작스럽게 포항 저지를 입고 시즌 마지막 3-4경기 뛴게 고작이니 말이다.하지만 시즌 막판 모습을 드러냈던 그는 3경기 4골이란 엄청난 괴력을 선보였다.흡사 인터밀란의 블랙 슈퍼 서브 마르틴스를 연상케 하는 유연성과 순간 포착능력은 대단했었다.하지만 투무는 그해 시즌 말미인 FA컵까지만 뛰고 이듬해 정식계약을 체결하지 않아 많은 팬들에게 궁금증을 안겨주었던 장본인이다.
4.그 외 전북의 잔코선수와 부산의 뚜레,성남의 분데스리가 슈트트가르트 출신의 아데마르,90년대 중반 울산공설운동장을 누볐던 단신의 마니,K리그 최초의 코스타리카 출신 용병 캄포스,솔로마틴(성남),프리미어리거로써 부산의 포터필드감독이 급구 데려왔지만 정말 금방 팀을 훌쩍 떠나버린 마스덴,2004시즌 모팀의 공격을 이끌었었던 마리우 선수,한밭벌에서 정말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콜리선수 등은 참 아쉽게 그렇게 일찍(주관적으로 볼때) 떠나버려 아쉬움과 여운을 남겨주었었다.
에필로그..
83년 국내에 프로축구가 도입된 이래로 모두 611명의 이방인 선수들이 국내선수들,팬들,코칭스태프 들과 호흡하며 그라운드를 누볐다.그들은 때론 우리에게 선진축구를,때로는 화려한 기술을,때로는 또 다른 축구세상을 보여주는 메신저 역할을 해왔고 더욱 일반일로 하여금 프로축구에 흥미를 갖게끔 만든 조미료같은 역할을 해왔다.
위에 열거된 용병들의 역사를 굳이 종합해본다면 그간 K리그 용병판도는 유럽파 vs 외계인파의 대결로 압축될듯 싶다.축구의 본고장 유럽리그와 크게 다르지 않은 흐림이니,K리그도 유럽못지 않다는 당당한(?) 결과가 나온다.ㅋ
용병선수들에게 관심을 갖는것이 이제 예전과는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것이 바로 이제 우리선수들로 서서히 하나둘씩 "용병선수"이란 통칭속에 해외프로축구무대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말마다 시청하는 프리미어리그의 박지성,이영표선수와 다른 해외에 나가있는 국내선수들 모두가 현지팬들에겐 "용병선수"으로 취급받을것이기 때문이다.
올시즌 k리그에서 뛰게 될 국내선수들은 물론이고 멀리 본국에서 머나먼 대한민국이라는 타국으로 날라와 코리안 드림을 꿈구는 용병선수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출처 : 사커월드(축구중독말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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