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미국월드컵을 통해서 나에게 축구가 뭔지를 알게해준 선수가 호마리우 선수였습니다.
당시 난 고2였고, 어리다면 어린 나이에 축구 중독에 빠지게 되었죠.
당시 호마리우는 바르셀로나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난 자연스럽게 바르셀로나 클럽의 짝사랑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이후 바르셀로나 칸텔라(유스)의 상징과 같은 펩 과르디올라를 알게되면서 언젠가, 언젠가는 바르셀로나 칸텔라에 대하여 자세하게 글을 한번 적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틈만나면 바르셀로나 칸테라 소식을 전하기도 하고 어린 유망주를 소개하기도 하고 이런 정보를 구하기 위해서 현지친구들이랑 메신저도 하고, 칸테라의 하나하나 소식과 얘기들이 나에겐 좋은 자료가 되었었죠.
우리나라 언론도 마찬가지지만 스페인 현지 언론들도 가장 서포트라이트를 많이 받는 A팀 선수들 얘기를 위주로 기사를 쓰다보니 당연히 클럽의 유스 얘기들은 한정되어 있고, 이역만리 떨어져 있는 대~한민국에서 스페인 즉 바르셀로나 칸테라 소식들은 접하기한 정말 힘들수 밖에 없습니다.

유럽에서 현재 가장 주목받는 칸테라(유스) 라고 한다면 아약스와 바르셀로나를 꼽을것입니다.

아약스 유스팀의 연습구장에 오후 2시쯤이 되면 버스몇대가 도착을 한다.
암스테르담  시내에 있는 학교로부터, 근교 60Km근방의 학교로부터 8세부터 17세소년 , 200여명의 소년들이 버스를 타고 와서 훈련을 시작한다.
아약스 유스팀을 책임자중 한명인 알프레드씨는 특이하게도 스페인 사람이다.
부모님이 1961년 네덜란드로 이민을 가면서 자연스럽게 암스테르담에서 살고 있다.
11여년전 루이스 반갈감독이 아약스를 이끌고 있었을 당시에부터 난 아약스 유스에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처음 아약스유스에서 일을 했던것은 자원봉사(스카우트)와 같은 일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지역을 돌면서 좋은 재능의 선수들을 입단시키며 한마디로 보너스를 받는 직업이었죠. 지금은 내 밑에 8명의 스텝과 33명의 자원봉사(스카우트)가 있어요. 이들 총 41명의 사람들은 네덜란드에 국한지어서 전역을 돌면서 좋은 유스 재능들을 스카웃하는 역활을 합니다. 어디까지나 네덜란드지역에 한정지어서만 하죠."

스페인의 대표적인 클럽인 바르셀로나의 칸테라 안에는 기숙사인 마시아가 있다.
일반적으로 바르셀로나의 유스팀을 마시아 라고 부르는것이 이 기숙사 이름이 "라 마시아"이기 때문에 바르셀로나 칸테라를 마시아 라고 부른다.
스페인 전역에서 온 어린 선수들이나 외국에서 온 어린 선수들은 이 기숙사인 마시아에 머물면서 훈련을 한다.
이 마시마의 유지비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든다. 질좋은 식사,학교 교육비와 맨투맨 교사와의 공부, 마시아에서 학교까지 버스 왕복제공, 정말 뛰어난 유망주같은경우에는 부모님 이사비용과 거주지까지 제공해주기도 하는등, 아약스 시스템하고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

아약스의 경우는 기숙사 대신에 집에서 다뉘게 해서 불피용한 비용을 줄이며(그래서 네덜란드 지역한정으로 선수를 뽑고, 그선수는 훈련장근교로 이사를 와야됨)

아약스유스를 총책임자인 반데브론씨는 이런말을 한다.
"호주, 러시아,중국으로부터 입단테스트를 받고 싶다는 문의가 많이 들어온다. 우린 항상 그들 부모님에게 말을 하죠.
그 소년이 아약스에 입단테스트를 받고 싶다면 암스테르담, 아약스 근교로 이사를 와야될것이다."
설사 이들이 입단테스트를 받았다고 해서 모두 유스팀에서 뛰는것은 아니다,엄격한 테스트를 거치고, 200여명을 뚫고, 아약스A팀에서 뛰는 선수는 불과 몇명정도 밖에 되지 않으니 얼마나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되는지 알수 있다.

오후 2시에 아약스 연습구장에 도착하면 어린 선수들은 옷을 갈아입고 피치로 나온다.
3시부터 훈련을 시작하고  9개의 피치가 마련되어 있는 연습구장에서 훈련을 하기 시작한다.
전 바르셀로나 선수였고 아약스 출신인 데부어는 아약스 11세 카테고리의 코치로 일하고 있다.
크루우프가 10살때 ,베르캄프가 12살때, 난 14살때 아약스에 입단해서 훈련을 시작하였다.
"내가 처음입단했을때와 비교해보면 현저하게 시설면에서 좋아졌어요,무엇보다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현재 A팀에서 뛰고 있는 유스출신은 8명이 되기도하죠.정말 기쁜일이 아닐수 없어요."

하지만 이런 아약스 칸테라에서 성장한 선수들이 A팀에 활약후 다른 리그로 이적하는일은 피할수 없는 일인것은 분명해졌다. 데부어가 말하길." 일찍부터 아약스의 칸테라 선수들은 유럽의 본보기와 같은것이었죠. 하지만 우리가 목표로 하고 있는것이 바로 바르셀로나의 칸테라입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그들에겐 철학이 있어요. 이 철학 아래서 모든 유스선수들이 훈련을 하죠. 한예를 들면 아약스의 철학중에 하나인  4-3-3이라는 전술은 이미 아약스의 전술로 인식되고 있죠. 바르셀로나 또한 우리와 매우 비슷해요, 레알 마드리드, 발렌시아등 그들은 이런부분이 부족하죠.
벤자민에서 A팀까지 모두 이런 시스템에서 훈련을 시작합니다.
같은 시스템에서 어린시절부터 훈련을 시작한다는것은 정말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바르셀로나 칸테라가 매우 부러운것이 많은 A팀선수들이 유스출신이라는점도 있지만 유럽뿐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에서도 선수들을 데리고 와서 아무문제없이 적응시킨다는 거죠.

그럼 본격적으로 바르셀로나 칸테라(유스)에 대하여 살펴보자.
1978년 프랑코총통 사망이후 바르셀로나클럽의 의장을 뽑는 선거에 민주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그이전만해도 바르셀로나클럽의 의장을 뽑을때도 프랑코총통의 입김과 압력이 상당히 작용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사망이후 바르셀로나는 최초의 민주주의 방식의 의장선거가 진행되었다.
바스크 피가 흐리고 있는 누네즈는 어린나이에 부모님의 사업관계로 바르셀로나에 이주를 하게 된다.
1970년대 유럽에서 건설붐이 일어나면서 그들 가족들은 엄청난 재산을 모으게 되고 스페인 대표적인 부동산회사인 누네즈 나바로라는 회사를 경영하였다. 당시에 8명의 후보자들중에서 가장 지지율이 떨어졌지만, 요한크루우프와 렉사흐가 지지성명을 발표하면서 전세는 급격히 누네즈쪽으로 쏠리게 되었다.

왜 요한 크루우프, 렉사흐 누네즈를 지지하였던가?
누네즈의 재력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아약스 유스시스템의 결과물이라고 하는 요한 크루우프는 아약스 유스시스템을 바르셀로나에 도입해야된다고 주장을 하였고 누네즈는 자신이 당선이 되면 요한크루우프에게 유스시스템을 맡기겠다고 하였다.
렉사흐의 경우는 요한과 더불어서 1970년대 바르셀로나를 이끌었던 까딸류나 출신으로 최초로 피치치(득점왕)에 거머쥐면서 까딸류나인들에게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그였다. 렉사흐 또한 요한과 더불어서 유스시스템을 소중함을 강조하였기에 이들은 누네즈를 지지하게 되었다.

누네즈가 당선이 되면서 자신의 핵심공약으로 바르셀로나 칸테라조직을 새롭게 정비를 하게 된다.
먼저 클럽의 사무실로 사용되어오던 17C 고풍스러운 건물을 기숙사(라 마시아)를 개조하고, 연습구장을 만들고 수많은 스카우트 조직을 만들어서 정비를 하였고 이윽고 1979년 10월 드뎌 바르셀로나 사람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라 마시아라고 불리는 바르셀로나 칸테라가 개소를 하게되었다.

2편으로.....

출처 : 사커월드(투르크짱님)

Posted by 공차는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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